Monday, February 15, 2010

빌립보서 3장 1절~ 11절(진정한구원의 길) 12절~21절(목표를 향한 달음질)

진정한 구원의 길

=====3:1
종말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 '종말로'(* , 토 로이폰)는 대부분 '결론적으로', '마지막으로'로 번역되었다(KJV, JB, NIV, RSV). 그러나 이 단어가 서신서에서 마지막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된 경우는 극히 드물며(고후13:11), 오히려 새로운 주제를 소개하려고 할 때(살전 4:1;살후 3:1)많이 사용되었다.그러므로 본절의 '종말로'는 바울이 끝을 맺기 위해 사용했다기 보다는 새로운 주제를소개하기 위해 사용했으며 '이제는', '더 나아가서', '덧붙여서'라고 번역하는 것이타당하다(Goodspeed, Knox, Houlden, Moffatt). 한편 바울은 본 서신의 여러 곳에서'기뻐하라'고 명령하고 있다(1:18;4:4,10).빌립보 교인들은 바울이 옥중에 있을 때 여러가지 어려움을 당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기뻐하라'고 한 것은 기뻐함을 통해서 교회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불일치를 해소(解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 안에서'는 성도들의 이러한 기쁨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가능한 것임을 시사한다.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같은 말'에 대한 해석에는 세 가지 견해가 있다. (1) '주 안에서 기뻐하라'를 가리킨다(Alford, Weiss, Moffatt). (2) 3,4장에서 언급된 교회내의 불일치에 대한 경고를 가리킨다(Lightfoot).(3)거짓 교사들에 대한 경고이다(Zahn, Meyer, Scott, Vincent).이 세 견해 중 마지막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 왜냐하면 (1)은 문맥상 다음에 이어지는'너희에게 안전 하느니라'와 연결되어지지 않으며 (2)도 2절 이하에 기록된 거짓 교사의 경고와 일치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절은 복음에서 벗어난 사실들을 지적해주는 것이 아무리 지나치다고 할지라도 지루함이 없다는 의미이다.

=====3:2
본절은 유대주의를 따르고 이방인 개종자들에게 유대주의를 강요하는 자들에 대해조심 하라는 권면이다.
개들을 삼가고 - '개들'은 길거리를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덤벼드는 사나운 짐승을 가리키는 것으로(Lightfoot) 경멸스러운 존재를 가리킬 때 사용했던 상징적 표현이다(신 23:18;삼상 17:43;잠 26:11;사 56:10,11). 예수께서도 이 말을 진리를 거역하는 자들에게 사용하셨고(마 7:6) 이방인을 가리킬 때도 사용하셨다(마 15:26,27). 본문에서의 '개들'은 성도들을 괴롭히는 유대주의 행악자들을 지칭한다(Michael).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 '행악하는 자들'은 문자적으로 '악한 일꾼들'이다. 이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믿지 않고 율법을 행함 으로 구원을 얻으려고 하는 자들이다.
손할례당을 삼가라 - '손할례당'의 헬라어 '텐 카타토멘'(* )은 문자적으로 '절단한자'를 의미한다. 이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버리고 인간적 노력의 산물인 의식적인 행위만 중요시하는 자로서 율법을 고수하였다.

=====3:3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 - 본절은 2절에서 경고한 내용의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율법에 따른 행위만을 일삼는 유대주의자들은 진정한 할례당이 아니고 마음에 할례를 받은 자들이 진정한 할례당이다(롬 2:25-29;골 2:11). 바울은 진정한 할례당의 특징을세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여 - '봉사'에 해당하는 헬라어 '라트류온테스'(* )는 유대인들이 공식적인 예배를 드릴 때 사용한 말이다(눅 2:37;행26:7;롬 9:4,TDNT). 진정한 할례당은 전통이나 형식에 지배받지 않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기쁜 마음으로 예배드린다(시 51:17).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 유대주의자들은 율법을 지키는 행위를 자랑하였다. 그러나 참할례당은 그리스도 예수를 자랑하는 자들로서 모든 만족과 소망이 그리스도를통해서 나오는 것임을 아는 자들이다(갈 6:14).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 '육체' 에 해당하는 헬라어 '사르키'(* )는일반적으로 몸(눅 24:39), 인간의 성품(요 1:14), 타락한 본성(롬 7:5) 등을 가리키는데 사용되었다(Schweitzer, Muller). 본절의 '사르키'는 그리스도 밖에 있는 모든 것즉 인간의 의식(儀式)이나 공적 등을 가리킨다. 본절은 진정한 할례당인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의(義)를 얻을 수 없는 의식과 자랑을 신뢰하지 않으며 오직 그리스도만을 신뢰함을 시사한다(Kent, Martin).

=====3:4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니...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 사도 바울은 육체를 신뢰하고 있는 유대주의자들을 반박하기 위하여 자신의 간증을 하고 있다. 그는 성령으로 예배하고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는 자이기도 하지만 육체를 자랑할만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육체를 자랑하지 않았다. 바울이 육체를 자랑하지 않은 것은 자신이 육체를신뢰할 만한 조건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만이자신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확실한 진리이며, 그 어떤 것도 구원에 이르게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확신했기 때문이다(Ridderbos).

=====3:5
본절에서 바울은 자신의 육체를 신뢰할 만한 근거들을 제시한다.
내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고 - 이스라엘 혈통을 가진 자들은 하나님의 명령대로난 지 팔 일만에 할례를 받아야 했으며(창 17:12;레 12:3), 이방인들이 유대교로 개종할 때는 성인이 되어서 할례를 받았다(행 16:3). 바울은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과 달랐을 뿐만 아니라 난 지 십삼일 만에 할례를 받았던 이스마엘 족속과도 달랐다. 그는오로지 율법에 정한대로 난 지 팔 일만에 부모로부터 할례받은 진정한 유대인이었다.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 바울은 이스라엘 족속의 혈통을 가지고 태어났다. '이스라엘'은 야곱이 천사와 씨름하여 얻은 선택된 언약의 백성임을 의미하며 '족속'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민족으로 하나님과 약속의 관계를 가지고 있는 거룩한 백성의 개념을 가지고있다(Lightfoot). 바울은 이방인에서 개종한 사람이 아니라 순수한 이스라엘태생으로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의 권리와 특권을 소유하고 있다(Hawthorne).
베냐민의 지파요 - 베냐민은 야곱이 가장 사랑하는 아내 라헬의 아들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이스라엘의 첫번째 왕인 사울이 이지파였다(삼상 9:1,2). 하만의 음모(陰謀)에서 이스라엘을 해방시킨 에스더와 모르드개가 베냐민 지파였다. 또한 베냐민 지파는 왕국이 분열되었을 때 다윗 왕조에 신실하게 충성하였으며 바벨론 포로때에는 성전 건축을 위해 유다와 레위 지파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갔다(느 11:7-9). 바울은 이런베냐민 지파에 속한 것을 매우 자랑하였으며(롬 11:1) 이 자랑을 통해서 자신이 베냐민 지파에 속한 순수한 유대인임을 밝히고있다(Hendriksen, Kent).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 본절은 바울 자신이 '아브라함의 씨'로서 이방인의피가 전혀 섞이지 않은 히브리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히브리인임을 밝히고 있다(Kent,Hawthorne). 그는 유대인 방식으로, 히브리말로써 양육을 받은 자였다(행 22:2,3, Mu-ller).그러므로 그는 혈통은 물론 히브리말과 히브리 관습을 그대로 보존한 순수한 히브리인이 었다.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 바리새파는 가장 엄격한 유대 종파로서 구약의 율법은물론 구전이나 서기관이 해석한 전승을 연구하며 따르는 자들이다(Hawthorne,Muller).바울은 바리새인의 아들로 태어나(행 23:6) 바리새파에 입문한 자였으며 그 가운데서도 가장 존경받는 선생 가말리엘 밑에서 수학했다(행 22:3). 그러므로 그는 바리새인중에서 가장 신실하게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자였다(Beare).

=====3:6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 - 다메섹 도상에서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의 바울은 유대인이면서 바리새인으로서 예루살렘성 밖에까지 그의 이름이 알려질 정도로 그리스도인을 핍박하던 자였다(행 9:13,21). 그는 교회를 핍박하는 것이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순수성을 보존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랬기 때문에 바울은 바리새인으로서 어느 누구보다도 떳떳하게 자랑할 수 있었다. 한편 '율법의 의'는 율법이 요구하는 모든 명령들과 기준들을 지킴으로 얻어지는 '의'를 의미한다. 바울은 이런 율법을 온전히 지켜서 다른 사람이 볼 때 흠이 없었던 자였다. 그러나 바울이 지킨것은 율법에 대한 형식적인 순종에 불과하며 하나님이 진정으로 요구하시는 영적 순종에는 미치지 못하였다(Kent).

=====3: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 '무엇이든지'는 단지 앞의 구절(5, 6절)에서 언급된 것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앞절들(5,6절)에서 언급한 바울이 신뢰할 만한 육체의 조건들은 다만 대표적인 것에 불과한 것으로 본절의 '무엇이든지'는 바울 자신에게 이익이 되었던 모든 것을 가리킨다(Vincent, Kent). 바울은 유대교에서 자신의 외적인 것들이 자랑거리가 되었었다. 그러나 그가 그리스도를 만난 후부터 이전의 자랑거리가 이제는 아무 쓸모없는 것이되고 말았다. 구원이 단지 예수의 은혜로 주어지는 것임을 깨달았을 때 과거에 구원을 얻을 조건이 되리라 생각했던 외적인 조건들이 해로 여겨지게 되었다. '여길 뿐더러'에 해당하는 헬라어 '헤게마이'(* )는 완료 중간태로서 해로 여겼을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여전히 해로 여기고 있음을 나타낸다.

=====3:8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에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 앞절에 이어 본절에서도 '헤구마이(* , '해로여김')를 반복하여 사용함으로 자신이 해로 여기고 있는 확신이 지속되고 있는것을 나타내며(Kent) '모든것'은 7절의 유익했던 '모든 것'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를 알아가는데 방해가 되는 모든것을 의미한다(Martin, Bonnard, Dibelius).'가장 고상함'의 헬라어 '휘페레콘'은 '탁월함'이라는 문자적인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바울 자신이 가장 뛰어난 것을 위해서 모든 것을 버렸음을 의미한다. 한편 '내 주'는 그리스도와 바울 자신과의 친밀한 관계를나타낸다.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 '내가그를 위하여'라 함은 '내가 그리스도를 얻기 위하여'라는 의미이다. 이처럼 바울은 그리스도를 얻기위하여 지금까지 그가 귀중하게 여겼던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여기서모든 것을 잃어버린 때는 그의 회심의 때를 가리킨다. 뿐만 아니라 그는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여겼다. '배설물'의 헬라어 '스퀴발라'(* )는 개에게 던지는것으로 '똥'이나 '음식 찌꺼기' 또는 '쓰레기'등을 의미한다. 이것은 바울이 그리스도를 만난후 그 이전의 삶 전체에 대해서 얼마나 철저하게 버렸는가를 시사한다(Hawtho-rn, Martin).

=====3: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 본절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는 재림의 날에 구원얻는 것을 나타낸다(Kent, Martin). '발견되리'는 앞절의 '그리스도를 얻고'와 동등하게 '히나'(* ,'...하기 위하여')에 연결된 목적절로서 '바울 사도가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음이 발견되려'라는 의미이다(Vincent, Hawthorne). 이것은 바울이 그리스도와 긴밀한 연합 관계를 통해서 자신의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로 말미암은의를 힘입고 있음을 시사한다.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 '의'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카이오쉬넨'(* )은 법정에서 사용된 용어로 두 부류 가운데서 한 쪽은 '옳다'고 인정하고 다른 한 쪽은 '정죄'할 때 사용되었다(Hawthorne).그러므로 본절은 믿음을 통하여 '의'를 얻으며 율법을 통해서 의를 얻지 못한다는 의미로, 바울 자신이갖고 있는 의가 자신의 노력이나 율법을 지키는 행위에 의해서 온 것이 아님을 시사한다.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하나님께부터 의롭다고 인정되는 것은 오로지 십자가에서 죄를 속량하신 그리스도를믿음으로써만 가능하다. 유일한 조건인 '믿음'은 '행위'와 반대되는 것으로 자신의 노력이나 행위로는 '의'를 얻을 수 없음을 인정하고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Kent).

=====3:10
내가 그리스도와...알려 하여 - 8절의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을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한 것이다(Kent).여기서 '알려하여'의 헬라어 '그노나이'(* )는지적지식 뿐 아니라 경험적 지식을 가리키는 것으로 과거나 현재처럼 앞으로도 계속해서 알기를 원한다는 강한 의지를 시사한다.
그 부활의 권능 - 바울이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알기를 원했던 것 '그 부활의 권능'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역사적 부활이나 그리스도인이 죽음 이후 경험하게될 육체적부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Muller) 부활하셔서 믿는 자의 삶 가운데서 역사하시는그리스도의 능력을 나타낸다. 이 부활의 권능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새로운 삶을살도록 한다(롬 6:4). 바울은 그리스도를 단순히 역사적 사실로서만 알기를 원치 않았다. 부활하셔서 영원히 살아 역사하시는 그리스도를 그의 개인적 삶 가운데서 구체적으로 경험하기를 원했다(Hawthorne).
그 고난에 참예함 - 본문은 '부활의 권능'과 분리된 전혀 새로운 경험이 아니라 같은 경험의 또 다른 측면이다(Hawthorne). 이것 역시 단순히 그리스도의 대속적 고난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경험하게 되는 내외적인 고난을 말하는 것으로(Kent), 그리스도인들이 삶을 영위하는 가운데 자신을 그리스도와 동일시함으로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골 1:24).이러한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함으로 그리스도인들은 장차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롬 8:17-18;고후 4:7-11).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 본문은 앞서 언급한 '그 고난에 참예함'을 보다 직접적이고 심도있게 표현한 것이다(Muller). 이것은 단순히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에 참예하는 것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 자신의 옛사람을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지내고(롬 6:5,6;고전 15:31;갈 2:20), 그리스도의 새로운 부활의 생명으로 연합(聯合)하여 계속 성장해야 함을 시사한다(Kent).

=====3:11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 '어찌하든지...이르려 하노니'의 헬라어 '에이 포스 카탄테소'(* )는 부활에 대해다소 의심을 내포하는 듯하다. 이에 대해서 혹자는 바울이 부활 자체를 의심하는 것이아니라 부활의 방법에 대해 의심한다고 주장한다(Lenski). 그러나 오히려 이것은 그의 깊은 겸손과 조심스런 바람의 표현으로서 자기 신념을 배제하는 것으로 보아야한다(L-ightfoot, Kent, Hawthorne, Hendriksen, Muller). 한편 '죽은자 가운데서 부활'에 해당하는 헬라어 '텐 엑사 나스타신 텐 에크 네크론'(* )은 신약성경에서 찾아보기 힘든 아주 드문 표현이다. 일반적으로 의인과 죄인 모두의 부활을 나타낼 때는 '아나스타시스 톤 네크론'(* )을 사용한다. 이러한 일반적 표현과는 달리 본절에서는 전치사 '에크'(* ,...로 부터')가 두번씩이나 사용된 것으로 보아서 의인의 부활혹은 영광의 부활을 뜻하는 부분적인 부활로 보아야 한다(Kent, Muller, Hawtherne).즉 본절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과 그의 고난에 참예하고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그와같이 된 그리스도인들이 누리게 될 영광의 부활을 시사한다(계 20:4-15).


목표를 향한 달음질

=====3: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 본절은 바울이 이미 도달한 현재의 상태와 앞으로 도달하여야 할 목표 사이의 갈등을 나타낸다(Martin).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은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만났던 것을 암시한다(Muller). 그는 그곳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통해 회심하게 되었다. 그의회심은 믿음의 경주에 있어서 끝이 아니라 시작으로서(Robertson) 그가 열망하는 완전함에 이르기 위하여 믿음의 경주 즉 영적 성장을 향해 계속해서 달음질해야 한다. 여기서 '좇아가노라'로 번역된 헬라어 '디오코'(* )는 '추적한다'라는 의미로 사냥이나 달리기 경주에서 사용된 용어이다. 본절에서 '디오코'는 좀더 적극적이고 열심히 노력하는 강한 표현으로 그리스도를 배우고 닮아가고자 하는 바울의 진지한 노력을 시사한다. 바울은 본절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리스도께서 자신들을 구원해 주신목적을 계속 추구해야 할 의무가 있음을 자각시키고 있다.

=====3: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 본절은 앞절의 반복이다. 바울이 자신의 과거에 집착(執着)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구원해 주신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나아감을 강조하는 이유는 아마도 빌립보 교인들 가운데 행위와 의식을 강조하며 자신들이받은 영적 은혜가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는 극단적 완전주의자들이 존재했기 때문인 듯하다(Kent). 본문의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는 바울의 목적을 향해 달려가는 일관된 삶의 자세를 나타낸다. 여기서 '잊어버리고'의 헬라어 '에필란다노메노스'(* )는 과거의 기억이 자신의 관심을 빼앗아 진보를 방해하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것을 의미한다. 바울은 '에필란다노메노스'를 통해서전에 지녔던 유대인으로서의 특권이나 그리스도인으로서 이루어 놓은 업적들로 인해서믿음의 경주를 방해받지 않도록 할 뿐 아니라 앞에 있는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신 목적을 잡기위하여 전력을 다해 믿음의 경주를 계속하고 있다(Martin).

=====3:14
푯대를 향하여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타 스코폰'(* )은 문자적으로 '푯대를 똑바로 쳐다보고'라는 의미이다. 이는 경주자가 달려가고 있는 경주에 주의를 집중시키는 것을 강조한 것으로 바울이 푯대이신 예수 그리스도(히12:1,2)만을 바라보고 경주할 뿐 아니라 그리스도인들도 삶의 여정 속에서 자신들의시선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고정시키고 그를 향하여 전진하여야 함을 시사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위에서 부르신 부름'은 경주의 승리자에게 상을 주기 위해 심판관 앞에있는 높은 단으로 올라오도록 명하는 것에서 연유된 표현으로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실제적인 부르심을 의미하며(고전 1:26;7:20;엡 1:18;4:1,4;살후 1:11) '상'은 경주 뒤에 있을 영광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그리스도안에서 이루어질 구원의 완성을 시사한다.

=====3:15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 '온전히'의 헬라어 '텔레이오이'(* )는 더 이상의 노력이 필요치 않은 절대적 완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전의 연약과 무지에 비하여 꽤 성장한 상대적 완전으로서 더 높은 목표를 향한 노력의 여지가 아직도 남아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고전 2:6;14:20;엡4:13;골 1:28;4:12, NIV, KJV, Kent, Vincent).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소속되었고 하나님께로 구별되어서 '온전히 이룬 자'가 되었으나 아직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分量)까지 성숙해가야 한다(Muller).
만일 무슨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바울은 자신이 생각하는 '온전'에 대해 혹시나 빌립보 교인들 중에 반대가 있거나 다른 생각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시리라고 확신한다(Martin, Kent).

=====3:16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 바울은 본절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비록 동일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을지라도 그 성숙의 정도가 서로 차이가있기 때문에 믿음의 분량대로 최선을 다해 영적 성장을 이루어가야 함을 가르치고 있다(히 6:11,12). '그대로 행할 것이라'의 헬라어 '토 아우토 스토이케인'(* ) 중 동사 '스토이케인'은 '보조를 마추라', '일치하여 행하라'는의미를 가지고 있다(갈 6:16). 바울은 '스토이케인'을 사용해서 다시 한번 성도들 상호간에 성숙과 의견의 차이가 존개함에도 불구하고 서로 조화와 협력을 이루어 나갈것을 일깨우고 있다(Hawthorne, Kent).

=====3:17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했던 것과 같이(고전11:1) 빌립보 교인들이 따라야 할 모델로서 자신을 제시하고 있다. 바울의 이와같은 권면은 자기를 자랑하는 우월감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Kent).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이 그리스도인의 헌신에 대하여 모델을 통한 실제적인 교훈이 필요하였고, 바울자신이 그리스도를 본받는 구체적인 모델이었기 때문에 자신을 본받으라고 권면하고있다(7-16절;고전 11:1, Hendriksen).
또 우리로 본을 삼은 것같이 그대로 행하는 자들을 보이라 - 본절에서 바울은 '자신'만을 언급하지 않는다. '우리'는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를 암시한다(2:25,29,Muller, Hendriksen). 바울은 본절에서 자신은 물론 다른 동역자들의 삶을 빌립보 교인들이 배우기를 권면한다.

=====3:18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에 대해서 두 가지 견해가 있다. (1) 혹자는 십자가의 공로를 무시하고 율법의 규범을따라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들로서 2절에 언급된 유대주의자들을 가리킨다고 해석한다(Lenski, Muller, Barth, Hawthorne). (2) 혹자는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와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왜곡하여 율법의 모든 금지 조항을 부정하는 자들을 가리킨다고 해석한다(Lightfoot, Kennedy, Beare). 두 가지 견해중 후자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다음 절에서 죄를 사하시는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왜곡(歪曲)하여 참자유가 아닌 방종을 일삼는 자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Kent).

=====3:19
본절은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들이 가지고 있는 특성에 대한 설명이다.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 '멸망'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폴레이아'(* )는 '구원' (* , 소테리아)의 반대 개념이다. 이는 특별히 사악한 자들에 대한 형벌로서 영원한 파멸을 가리킬 때 사용되었다(마 7:13;벧후 3:7;계 17:8).'십자가의 원수'들은 그리스도와 연합될수 없으며 육신의 욕망에 빠져 있기에 영원한형벌을 받게 된다.
저희의 신은 배요 - 본문은 쾌락주의자들을 가리키는 표현으로(Muller, Kent), 육체의 정욕대로 사는 것을 시사한다(롬 16:18;고전 6:13;유 1:11).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 '부끄러움'의 헬라어 '아이스퀴네'(* )는 '벌거벗음'(nakedness), 또는 '사람의 은밀한 부분'을 가리킬때 사용되는단어이다(Hawthorne). 따라서 본문은 '저희'가 마땅히 부끄러워해야 할 부도덕한 일들을 서슴지 않고 즐겼음을 시사한다(엡 5:12).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 - 그리스도인들이 '하늘 일'에 관심을 두는 반면(20절, 요3:12)이들은 '땅의 일' 즉 본능적이고 물질적인 것만을 생각하며 세상적 가치 기준을따라 행동한다(Muller, Kent).

=====3:20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 본절은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된 자들과반대되는 참그리스도인의 특성을 나타낸다. 빌립보 시민들이 비록 로마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 할지라도 여전히 로마 제국에 속해 있어서 로마의 시민으로서 특권을 누리는 것처럼 빌립보 교인들은 이 땅에서 외국인과 나그네(히 11:13;벧전 2:11)처럼 산다할지라도 하늘에 소속된 시민이다(Martin, Kent, Calvin).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비록 지금은 지상에 살고 있지만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자들이므로 하늘나라 시민 으로서 합당한 모든 책임과 의무를 기뻐하여야 함을 권면한다(Hawthorne).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 '거기로서'가 가리키는 것에 대해서 혹자는 '시민권'(Martin), 혹자는 '하늘'(Muller, Moffatt)이라고 주장하나, 두 가지를 모두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Kent).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의 연고지가 하늘이기 때문에 모든 관심사가 하늘에 있으며 진정한 구속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린다(롬 8:21-23). 왜냐하면 그의 재림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죄의 세력에서 완전히 해방시키는 온전한 구원을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Muller).

=====3:21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 바울은 본절에서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해 그리스도인에게 임할 온전한 구원의 모습에 대해 진술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때 그리스도인의 몸은 '낮은 몸'에서 그리스도의 '영광의 몸'으로 완전히 변화된다.여기서 '낮은 몸'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 살면서 갖고 있는 현재의 몸으로서 죄짓기 쉬운 욕망, 죽음, 질병, 고난등에 대해 무방비한 상태로 놓여 있는 육체의 연약성을 시사한다(Kent).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현재의 썩어질 몸을, 당신이 부활하실실 때 입으신 '영광의 몸' 즉 '썩지 아니할 몸', '신령한 몸' 으로(고전 15:42-44) 변화시키실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 곧 '그리스도'의 역사로 이루어진다.'역사'(役事) 의 헬라어 '에네르게이안'(* )은 초자연적인 능력을 가리킨다(Muller, Kent). 그리스도는 온 우주와 원수들,그리고 죽음에 대하여 초자연적이며 주권적인 능력을 가지시기에 마지막날 성도들을완전히 구원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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