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January 18, 2010

히브리서 7장 16절 ~ 28절

=====7:16
그는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법을 좇지 아니하고 - 본문은 11절의 부정적인 표현 곧'아론의 반차를 좇지 않고'와 동일한 의미로 11절에 대한 보충 설명이다(Lane).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법'은 포괄적으로 모세의 율법을 뜻하는 것으로 레위 계통의 합법적인 후손, 혹은 어떤 신체적 자격 요건 등을 가리킨다(Michel). 그리스도께서 제사장이 되신 것은 율법에 나타난 바대로 레위 자손의 혈통이나 외적 조건에 의해서 된 것이 아니다.
오직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좇아 된 것이니 - 본문은 11절의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과 연관된다. 저자는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법'과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대조시켜서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이 썩거나 죽을 수밖에 없는 제한된 육체의 계명 즉 율법에 의해서 된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으로 된 것임을 강조한다(시 110:4,Lane). 그리스도는 성경이 증거 하는대로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만세의 왕'으로서(딤전 1:17) 그의 제사장직은 영원한 생명를 부여하는 영원한 것이다.

=====7:17
증거 하기를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라 하였도다. - 본절은 시110:4의 인용으로서 16절에서 저자가 말한 것 곧 그리스도가 무궁한 생명을 소유했다는 것에 대한 성경적 근거이다. 저자가 본절에서 '증거 하기를'에 해당하는 헬라어 '마르튀레이타이'(* )를 사용한 것은 저자 자신이 시 110:4을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에 관한 말씀으로 해석하고 있음을 시사한다(Lane).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이 불완전한 레위 계통의 제사장직과 무관하며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제사장 직임을 나타내어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의 완전함을 암시한다.

=====7:18
전엣 계명이 연약하며 무익하므로 폐하고 - 본절과 다음절은 저자가 11절부터 언급한 내용의 결론이다. '계명'은 문맥상 제사장직에 관련된 율법을 가리킨다고 볼 수도 있느나(Lane), 16절에서와 마찬가지로 모세의 모든 율법을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Morris). 한편 '연약하며'의 헬라어 '아스데네스'(* )는 율법자체가 연약하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사람들이 연약하여 율법을 지킬 수 없음을 의미한다(Lane). 또한 '무익하므로'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노펠레스'(* )는 율법이 단지 사람의 외형적인 것만을 정결케 할 뿐 그 내적인 양심(良心)을 깨끗게 할 수 있는 능력은 없음을 시사한다(9:9,10,14,23;10:14, Hewitt).

=====7:19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케 못 할지라 - '온전케'로 번역된 헬라어 '에델레이오센'은 인간이 하나님과 더불어 이루는 온전한 관계를 의미한다(11절). 율법은 단지 외형적인 것만 깨끗하게 하고 내적인 양심은 깨끗게 할 수 없어서(9:9,14) 사람들은 율법을 통해서 하나님과 더불어 올바른 관계를 형성할 수 없었다. 즉 사람들은 제사장직이나 성결 의식과 같은 율법적인 제도에 의해서는 하나님과 더불어 온전한 관계를 이룰 수 없었다(Riggenbach , Michel).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리라 - '더 좋은'(* ,크레이트토노스)이란 표현은 히브리서 저자의 독특한 표현이다(19, 22절;8:6;9:23). '더 좋은 소망' 즉 새 언약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 갈 수 있는 자격을 획득하였으며, 레위적인 율법 제도로는 결코 이룰 수 없었던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었다(Lane).

=====7:20
또 예수께서 제사장 된 것은 맹세 없이 된 것이 아니니 - 본절과 다음절은 새로운 제사장이신 예수와 레위 계통의 제사장 사이의 비교이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엄숙하신 맹세로 말미암아 제사장으로 지목된 반면에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맹세 없이 율법에 근거하여 제사장직을 부여받았다(28절). '맹세없이 된 것이 아니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우 코리스 호르코모시아스'(* )는 시 110:4의 추론으로 하나님의 맹세가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에 대한 확고한 보증이 됨으로 신자들은 그의 제사장직에 소망의 닻을 드리울 수 있음을 시사한다(6:18-20,Schneider, Thompson).

=====7:21
(저희는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었으되 오직 예수는 자기에게 말씀하신 자로 말미암아 맹세로 되신 것이라 주께서 맹세하시고 뉘우치지 아니하시리니 네가 영원히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 '네가 영원히 제사장이라'는 시110:4의 인용이다(17절).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은 하나님께서 맹세하심으로 부여된 것이며 하나님께서 자신이 맹세하신 약속의 신실성으로 인해(Cockerill) 보증된 것이다. 반면에 율법 하에서 이루어진 레위인의 제사장직은 하나님의 맹세나 약속 혹은 보증이 없이 이루어진 것으로 다만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법'(16절)을 좇아 이루어진 직분에 불과하다. 이러한 두 제사장직의 차이는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이 레위 계통의 제사장직보다 우월하며, 완전할 뿐만 아니라 더 나은 언약에 대한 보증임을 암시한다(22절).

=====7:22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 - 저자는 '언약'의 헬라어 '디아데케스'(* )를 본서에서 17회나 사용하여 중시하고 있는데 이곳에서 처음 나타난다. '디아데케',는 '유언', '서약', '의지'라는 의미로 70인역(LXX)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주권적이고도 은혜로운 '의지'를 가리킨다(Lane). 동시에 그 단어에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권위가 함축되어 있다(Morris). 문맥상 본절의 언약은 제의적(祭儀的)인 것으로(Lane) 옛 언약 즉 구약의 제의는 하나님께 가까이 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이었으나 외형적인 것만 정결케 하고 내적인 양심은 정결케 할 수 없는 불완전한 것이었다(18절).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운 언약을 수립하시고(8:8-10;9:15-20), 새 언약을 통해 백성들로 하여금 자신에게 온전히 나아올 수 있도록 하셨다(25절;9;14,15). 새 언약은 구약의 옛 언약보다 '더 좋은 언약'이다. 한편 '더 좋은 언약'인 새 언약에 대한 '보증'은 영원한 제사장인 예수 그리스도이시다(19절;13:20). '보증'에 해당하는 헬라어 '엥귀오스'(* )는 '보증인'이라는 의미로 이 보증인은 '중재자'의 뜻인 헬라어 '메시테스'(* )와는 달리(8:6;9:15;12:24)보증인 자신의 인격과 생명을 담보로 자신이 행한 말에 대해 보증한다는 강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Michel). 그리스도는 자신을 믿고 의지하는 백성들의 구원에 대한 담보로 구원의 영원한 보증이 되신다.

=====7:23
저희 제사장 된 자의 수효가 많은 것은 죽음을 인하여 항상 있지 못함이로되 - 저자는 새 언약의 제사장은 예수 한분뿐인 반면에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은 그 수효가 많음에 주목한다. 요세푸스(Josephus)에 의하면 아론부터 시작해서 A.D. 70년 예루살렘 멸망에 이르기까지 83명의 대제사장들이 취임했었다고 한다(Antiq. 20,227).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의 수효가 많다는 것은 그들이 죽을 수밖에 없는 유한한 존재이며 그들이 행하는 제의가 불완전함을 반영한다(1:1;10:1-4, Michel, Thompson).

=====7:24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나니 -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은 죽음을 인하여 제사장직을 감당할 많은 사람들이 필요하였던 반면 예수께서는 영원히 살아계신 분이시므로 뒤를 이을 다른 제사장이 필요하지 않다. 그리스도를 뒤이을 제사장이 필요치 않다는 사실은 그리스도께서 제사장이 필요치 않다는 사실은 그리스도께서 제사장으로 행하신 사역의 완전성과 영원성을 '아파라바톤'(* )은 70인역에서 드물게 나타나는 단어로 제사장이 그의 의무를 계속한다는 의미이다(Josephus). 예수의 영원성은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의 일시성과는 달리 그의 제사장직이 영구적임과 동시에 최종적(最終的)인 것임을 시사한다(Lane).

=====7:25
그러므로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덴'(* )은 본절이 23,24절의 논리적 귀결임을 나타낸다.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 '온전히'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이스 토 판텔레스'(* )는 '완전히','절대적으로'라는 의미로 레위 계통의 제사장직으로는 결코 이를 수 없는 구원의 완전성을 뜻한다. 한편 '구원하실'의 헬라어 '소제인'(* )은 현재시상이다. 본서에 나타나는 '구원'이 미래에 있을 종말론적인 유업을 가리키는 반면(1:14;5:9;9:28) 본절의 '소제인'은 그리스도의 순종과 죽음, 그리고 승천으로 말미암아 현재에 그리스도인들이 참여하고 있는 '구원'을 시사한다(2:3,4;6:4,5,9, Lane). 그리스도는 옛 언약의 제의 행위에 의지하지 않고 새 언약인 자신을 믿고 의지하며 하나님께 나아가는 모든 자에게 현재 구원에 참여케 하며 동시에 종말론적 구원에의 참여를 보증하신다.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 '간구하심이니라'의 헬라어 '엔튕카네인'(* )은 '중재하다'라는 의미로 예수께서 하나님께 특별한 복을 내려달라고 요청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과 하나님 우편에 좌정하심을 가리킨다(Lane, Snell, Morris). 이러한 그리스도의 중재 사역으로 인해 사람들은 예수를 자신의 구주로 고백할때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를 회복할 수 있게 된다.

=====7:26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 '이러한 대제사장'이란 앞에서 언급한 대로 영원하시며(24절), 자기를 의지하는 자들은 온전히 구원하실 뿐만 아니라(25절), 항상 살아서 그리스도인들을 하나님께 중재할 수 있는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그리스도는 영원한 새 언약에 합당한 제사장일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도록 모든 길을 마련해 놓으신 분이다. 저자는 영원한 구원의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신 대제사장 그리스도에 대해 다섯 가지로 묘사한다. 이 다섯 가지는 그리스도께서 새 언약의 대제사장으로 지녀야 할 성품과 지위를 나타낸다(Hauck).
거룩하고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시오스'(* )는 70인역에서 '충실한'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시 12:1).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지상 생활 가운데서 보여준하나님께 대한 순종을 나타낸다(5:7,8).
악이 없고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카코스'(* )는 '교활하지 않은','순수한'이라는 의미로 예수께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순수하셨으며 어떠한 악과도 접촉하지 않으셨음을 시사한다(Moffatt, Grundmann, Bruce).
더러움이 없고 - 이의 헬라어 '아마안토스'(* )는 '더럽혀지지 않은', '순결한'이라는 뜻으로 제의적 순결성을 나타낸다(마카비 2서 15:34).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은 제의 의식을 통해서 외적으로 더럽혀진 자신을 깨끗이 하였으나 그리스도께서는 전혀 더럽혀지지 않은 온전한 도덕적 순결성을 소유하셨다(Morris).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 이것은 앞서 언급한 그리스도의 세 가지 성품과 연결된다.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는 도덕적으로 죄인들과 분리되어 있어 근본적으로 죄인인인류와는 다른 존재이시다(Buchanan, Peterson).
하늘보다 높이 되신 자라 - '하늘보다 높이'의 헬라어 '휩셀로테로스 톤 우라논'(* )은 하나님의 보좌를 가리키는 표현이다(Lane). 예수께서는 레위 계통의 제사장과는 달리 승천하셔서(4:14)곧바로 하나님존전에 나아가신 대제사장으로서 완전한 중재자가 되신다(Morris).

=====7:27
저가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 레위 계통의 대제사장들은 속죄일에 다른 사람들의 죄를 위해 속죄 제사를 드리기에 앞서 항상 자기 죄를 위한 속죄 제사를 드린다(5:3;레 4;3-12;16:6-10). 왜냐하면 레위 계통의 대제사장도 역시 불안전한 인간으로 죄를 범할 수밖에 없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속죄일에 대제사장은 일 년에 한번자신과 백성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희생 제사를 드렸으나 저자는 본절에서 '날마다'제사를 드리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저자 자신도 대제사장이 일년에 한 번 속죄일에 희생 제사를 드린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날마다' 드리는 것으로
표현한 이유는(9:7,25;10;1) 대제사장이 제사를 매일 드렸다는 의미보다는 그가 부주의로 죄를 범했을 때 매일 속죄의 제사를 드려야 할 필요가 있었음을 지적하는 것이다(Bruce). 그러나 예수께서는 죄가 없으신 분이시므로 자신의 죄를 위하여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으실 뿐만 아니라(4:15)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도 반복적으로 제사를 드리실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그가 드린 한 번의 제사는 하나님의 독생자 되신 자신의 몸을 제물로 바친 완전한 제사였기 때문이다.
이는 저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니라 - 저자는 그리스도가 자신의 생명을 하나님께 드렸다는 사실을 그의 대제사장직의 핵심적인 기능으로 제시한다.(Zimmermann). 죄 없으신 완전한 대제사장인 그리스도가 완전한 자신을 제물로 드린 그의 속죄사역은 일시적인 레위 계통 제사장들의 속제 사역과는 달리 한 번으로 영구화(永久化) 될 수 있었다. 저자는 본절을 통해서 레위 계통의 대제사장들의 불완전성을 강조함과 동시에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인 자신을 제물로 바친 그리스도의 속죄의 완전성을 설명하고 있다.

=====7:28
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케 되신 아들을 세우셨느니라 - 저자는 본장을 결론지으면서 사람인 제사장과 온전하신 제사장이신 그리스도와 세 가지 차이점을 제시한다. (1) 율법과 맹세의 말씀. 옛 언약에 속한 레위 제사장들은 '율법'에 근거하여 제사장직을 물려받았으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서 맹세하셔서 약속하신 말씀에 근거하여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영원한 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의 신실한 맹세의 약속을 성취하였으며 영원한 구원을 이루셨다. (2) 사람과 아들. 옛 언약의 제사장들은 유한한 생명을 소유한 사람으로서 반복적이고 일시적인 역할을 하였으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로 영원히살아계셔서 온전한 중재 사역을 행하셨다. (3) 약점을 가진 자와 온전케 되신 자. 옛언약의 제사장은 약점을 가져서 불완전한 사역을 행할 수 밖에 없었으나 그리스도께서는 온전하셔서 지상 생활의 고난 가운데서도 온전히 순종하심으로 모든 믿는 사람의구원의 근거가 되셨다(2:10;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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